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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7회 베를린마라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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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12-25 23:53 조회1,0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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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7회 베를린마라톤 후기
작성자 :   곽명희     210.104.132.130 (2014-10-24 14:42)
이메일 :  kid62@hanmail.net
 

한달도 더 지나서 새삼스레 후기를 적는다는 것이 뜬금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지만 내 삶의 특별했던 한 시기를 그냥 기억속에 묻어버리기엔 아쉬움이 남아 늦게나마 이 글을 적어두기로 한다.

열흘간의 기행문은 생략하더라도 대회후기 하나라도 남겨두는것이 예의라는 생각에...

(사실, 직장의 바뀐 업무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도 하다는 핑계를 덧붙인다.)

 

-인천에서 베를린까지-

인천 대한항공 KE905항공기는 낮 115분에 이륙하여 13시간의 비행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도착했다. 7시간이라는 시차를 실감하며 내린 프랑크푸르트공항엔 오후 540분의 엷은 햇살이 아늑하게 펼쳐져 있었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7시간이 늦으니 이 시간 한국은 밤중도 한밤중인 새벽2시경이다. 나라는 달라도 하늘은 같은 하늘일텐데 하늘빛도 왠지 낯설게 여겨지고 건물들의 색깔까지도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달라보였다. 무엇보다 분명히 다른 풍경은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외국인일색이라는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약 세시간을 기다려 베를린으로 가는 항공기를 갈아타고 한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열흘간의 여행을 책임질 전용버스에 올라 첫 투숙지인 메르큐르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한국의 내 집에서 떠난지(24일 오전5시경) 24시간만에 여장을 풀었다.

 

그 다음날인 토요일은 엑스포행사장에서 배번호를 찾고 스포츠매장에서 쇼핑으로 2시간30분을 소요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부족하여 충분히 구경할 수가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후엔 쿠담거리, 마라톤대회의 피니쉬지점인 브란덴부르크문, 올림픽스타디움 등 일정대로 관광의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의 대회를 위해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낮부터 조금씩 내리는 비가 심상찮았다. 기온은 15,6도 가량이다.

 

-37회 베를린마라톤대회에서-

드디어 926, 아침7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30여분거리의 대회장을 향하는 중에 제법 비는 규칙적으로 내리고 거기에 따라 기온은 더 내려가서 춥게 여겨질 정도였다. 거의 한국의 11월 말의 날씨였다. 다들 비닐옷을 챙기고 물품보관소의 위치와 대회후 모임장소에 대한 주의사항 등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여기서부턴 모두가 자신의 물품보관을 위해 헤어져야한다.

은경이와 난 윤이철고문님과의 약속을 위해 3만번대 물품보관텐트를 찾아오기로 했는데 우리들의 보관소를 찾는데만 한참의 시간을 허비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또 시간이 걸렸다. 대회출발시간이 그다지 넉넉지 않다고 판단하여 우리의 출발선인 H라인에 곧장 찾아간 것이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 원인이었다.

출발시간부터 우리의 차례가 오기까지는 시간여유가 충분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이미 윤고문님께 가기에는 늦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달리다보면 만날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가졌고 우리가 가장 맨 앞쪽에서 출발하므로 천천히 달리다가 그 분이 우리를 발견하게 될것이라고 아주 편하게 생각을 했다. 4만명이 넘는 주자들속에서 발견해내는 일이 쉬운게 아닌데 운명처럼 만나게 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대회장에서의 참가자들의 표정들을 떠올려본다. 나라는 가지각색이었을 테지만 내 눈엔 모두 '외국인'으로 통칭되어 동양인이라곤 거의 없는 인파속에서 꾸질꾸질하게 내리는 비를 태연히 맞고서 어느누구 한사람 짜증을 내거나 서두르지 않는 여유를 보고 참으로 놀랐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회장에도 이제 질서와 예절이 자리를 잡은 듯 느껴지지만 이곳에서의 분위기는 좀 더 한단계 높은 마라톤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마라톤을 놀이처럼 즐기려는 장난스러움까지 엿보이는 여유는 한국의 비장하고 긴장하는 분위기와는 달라보였다.

 

비와 추위는 레이스에 결코 호전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출발과 동시에 두 다리는 경직되어 뻣뻣해지고 빗길의 불편함과 빽빽한 사람들의 사이를 요령있게 달리기란 쉽지가 않았다. 목표는 키로당 6분페이스, 더 이상 속도가 나지 않을만큼 5키로에 30분을 지키며 달리고 있었으나 썩 몸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12키로쯤에서 같이 달리던 은경이는 뒤돌아보니 근처에 보이지 않아 마음을 거두고 이제 홀홀단신 이 이국땅에서 42키로의 고독과 마주하며 달려야만 한다는 각오가 선다. 서울의 동아마라톤 그리고 일본의 동경마라톤주로와 비슷한 시내코스에다 경사가 거의 없는 주로였다. 지명이고 뭐고 아는게 없는 처지라 그저 땅만 보고 건물들과 주위의 주자들을 힐긋거리며 바라보는게 전부였다. 베를린은 도심에 야생의 공원들이 많다고 하는데 군데군데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친근하다.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어서 높은 건물들도 많지않고 도시가 깨끗하다. 가로수의 나무들도 많은 편이지만 우리나라만큼 정성들여 가꾼 흔적은 보이지 않고 무심하게 방치하는 듯이 보였다. 평범하면서도 꾸미지않은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어디에나 그렇듯이 주로에는 시민들의 응원과 참여도 많았고 다양한 음악과 연주가 풍성했다. 흥겹게 소리를 지르고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자기네 도시의 큰 행사에 대해 유난히 흥분하지도 냉담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독일인다운 차분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비는 그칠 기색이 없이 종일 내릴 듯 하였고 비에 젖은 온몸은 추위에 지쳐갔다.

 

20키로쯤에서 내 상의에 붙인 태극마크를 발견한 교포아주머니의 '코리아 파이팅!'이라는 반가운 음성에 힘이 솟았고 한국인의 긍지로 가슴이 뿌듯했다. 25키로에 다시한번 한국아저씨의 힘찬 음성을 들었던 것이 감격스러운 일로 남는다. 급수지점에 자원봉사자들은 우리나라와 다를바 없고 종이컵대신 얇은 투명비닐컵을 사용했는데 발밑에 컵이 조각나며 부서지는 소리가 싸르락 싸르락 들렸다. 재생원료로 만든 컵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일본의 동경마라톤대회는 종이컵을 커다란 봉투에 던져넣어 주로에 나돌아다니는 컵을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속도를 낼 수도 없고 더 이상 늦출수도 없이 자로 잰듯이 5키로 단위 30분의 기록이다. 20082월 동경대회에서 4시간 12분의 기록이 나왔는데 네사람이 동반주하며 사진도 많이 찍고 급수마다 휴식을 충분히 하며 편하게 완주를 했다. 지금 이 곳에선 혼자서, 즐기는 기분은 고사하고 힘겹게 달리고 있으니 같은 기록이라도 내용면에서 무척 차이가 난다.

 

주변의 주자들의 표정은 여유롭고 편안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회에선 얼굴을 찡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사람, 부상으로 절뚝거리며 걷는사람, 다리를 질질 끌며 할 수 없이 달리고 있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결같은 자세와 표정들이다. 달리는 일이 자연스레 생활화되어서 42키로에 대한 거리의 부담을 갖지않고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출발때의 모습이 골인후의 모습과 차이가 없었다. 42키로를 달리는 일이 특별할 게 없다는 표정들... 마라톤문화의 수준을 볼 수 있었다.

 

한참동안을 내 주변에 두 사람의 날씬한 여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데(둘이는 친구인듯 줄곳 무슨 얘기인가를 나누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달렸다) 그녀들을 내 페이스의 기준으로 삼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체력은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 내가 언제 다시 이 베를린의 거리를 달려보겠는가, 지금의 이 한발자국 한발자국은 내 생애 유일무이한 순간이고 다시 오지않을 시간이다, 다짐과 격려를 수없이 나자신에게 주문처럼 던졌다. 중도에 포기를 하면 국제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30키로를 지나면서 나의 연습량이 30키로정도를 크게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힘에 부치기 시작했지만 6분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40키로에 시계는 4:00 이였다.

 

두 여자주자는 점점 나의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서글픔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남은 거리가 얼마남지 않았기에 그녀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제법 열중하여 달리고 있었고 나는 그 반대의 상황이었다. 점점 속도는 늦어지고 급기야 1키로쯤 남겨둔 지점쯤에서 갑자기 구토증이 일기 시작했다. 내 몸은 산소부족을 호소하고 에너지가 거의 고갈되었다고 적색신호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대회며칠전의 장거리 비행과 시차, 추위와 비, 충분치않은 훈련 등 원인은 많지만 그러나 조금만 더가면 끝인데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정신이 혼미했다. 눈앞에 브란덴부르크문이 장엄하게 나를 기다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있는 앞에서 토하며 쓰러질 수는 없는데... 하늘이 노랗고 금방이라도 내장속의 것들이 입밖으로 솟구칠것만 같았다. 현기증이 나고 가슴은 요동으로 욱욱거렸다. 여기서 험한 꼴을 보이면 안된다, 이 무슨 창피한 모습인가, 나는 들고있던 면장갑을 입에 가져다 대고 제발 속이 안정되기를 바랐다. 적어도 골인할때까지 만이라도 별일이 없기를 간절히 빌고 빌며 갈짓자로 휘청거리는 다리를 재촉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브란덴부르크문을 통과하면 바로 골인인줄 알았더니 내 앞의 주자들이 속도를 늦추지않고 질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피니쉬는 야속하게도 약 4~5백미터 더 앞에 있었다. 나를 희롱하듯이 멀게만 여겨지는 골인점을 향하고 있는데 '언니!'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동생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일하게 주로의 사진 한 장을 완성하는 기쁨에 손을 들어주었다.(사진을 보면 눈이 움푹 패여있고 안색이 창백하다) 그렇게 힘겨운 완주를 했다. 잠깐동안 정신을 차리니 거짓말처럼 속은 편안해지고 몸도 차츰 회복되었다. 마지막 2.2키로를 16분이나 걸렸다. 그러면 어떤가 나는 세계 5대 대회의 하나인 베를린 마라톤대회에 왔고 고독하게 달렸지만 행복했고 힘겨운 완주의 감격이 있었다. 다음 대회를 언제 가게될진 아직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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